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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떠돌이 승려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무력적 소양과 인심을 끌어들이는 능력만을 바탕으로 점차 세력을 불려 당시 한반도의 2/3를 평정하는 등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재위 말년에 가혹한 폭정을 실시했는데 오늘날의 정신건강의학으로 볼 때 각종 전쟁과 정치를 시행하면서 편집성 성격장애와 같은 정신병이 발병하였고 망상, 환각, 의심 등의 행동 이상이 악화되면서 무자비한 폭군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무자비한 숙청에다 독선적인 정치 철학에 염증을 느낀 왕건의 역성혁명으로 축출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궁예가 세운 나라가 고려라는 사실...아시는지..
궁예가 고위 신라 왕족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실은 여러 가지 기록과 정황 증거가 있다. 궁예는 양길에게서 독립하기 전에 명주에 가서 호족 순식의 항복을 받았는데, 궁예가 그저 혈통도 알 수 없는, 아니 혈통이나 사칭하는 반란군 수령 나부랭이의 수하일 뿐이었다면 그렇게 순순히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고대에 흔히 이루어진 왕실의 선대조작은 일단 족보조작을 할 만큼의 재력과 세력을 확보한 후에야 가능했는데 궁예는 신라 말의 가난한 승려 내지 혼세의 비적대장 1에 불과(?)했기에 태봉 건국 전에는 그럴 힘이 없었다. 때문에 확실히 혈통을 조작할 능력이 없었을 때 순식이 귀부한 것을 보면 궁예는 다른 진골귀족들의 음모로 선조가 왕위계승에서 밀려나 숙청당한 왕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신라 왕의 초상화를 칼로 베었다는 일화를 비롯해서 신라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궁예는 신라의 지배층에 상당한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궁예 자신이 당시 지배층과 모종의 악연이 있으며, 지배층에서 밀려난 것에 대한 원한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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