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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이름 Francis, Jorge Mario Bergoglio
출생 1936.12.17. 아르헨티나
사망 2025.04.21.
경력사항
2013.03.~ 제266대 교황
2005.11.~2011.11. 아르헨티나 주교 회의 의장
2001.02.~2013 아르헨티나 로마가톨릭교구 추기경
1998.02. 아르헨티나 로마가톨릭교구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1997 아르헨티나 로마가톨릭교구 부에노스아이레스 부교구장
1992.06. 주교 수품
1992.05. 아르헨티나 로마가톨릭교구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좌주교
1980~1986 아르헨티나 산미겔 철학신학대학 학장
1972~1979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
1969.12. 사제 수품
1958.03. 예수회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사임을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바티리크스’ 사건이었지만, 그 근본 배경으로는 교황청을 지배해온 관료제적 구조의 고질적 병폐와 부패가 지목되었다. 국무원장 겸 궁무처장으로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던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은 이탈리아 출신 인사들을 요직에 대거 기용하며 실질적 실세로 군림했다.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탈리아계 Curia 관료–반(反)개혁파’ 집단은 크고 작은 비리와 전횡을 일삼았으나, 교황은 이들에 맞서기 어려운 고립된 처지에 놓여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탈리아 고위 관료들로 가득 찬 교황청 내부에서 독일 출신인 베네딕토 16세는 자신만의 지지 기반을 형성할 수 없었다. 권력 구조상 고위직에는 언제나 파벌이 존재하며, 그 파벌 간 배신은 자신들만의 규칙에서 가장 중대한 범죄로 다뤄진다.
베네딕토 16세는 바티칸 은행(IOR)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이를 관장하던 베르토네 국무원장의 방해 공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교황청 서열 2위로 알려진 비가노 대주교도 교황을 보좌하며 개혁을 추진하다가, 결국 베르토네의 지시로 비교적 허드렛일로 여겨지는 미국 주재 교황 대사직으로 좌천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과정에서 교황의 집사였던 파올로 가브리엘레가 교황과 비가노 대주교 사이의 내부 문건을 외부로 유출했는데, 이것이 바로 ‘바티리크스’ 스캔들의 실체라는 분석이다. 가브리엘레 집사는 최대 8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었으나 실제로는 18개월 징역형만 받고, 2개월 만에 교황에게 사면되었는데, 이 역시 개혁 세력의 힘이 꺾인 사실을 방증한다. 결국 개혁파로 여겨졌던 비가노 대주교와 가브리엘레 집사는 교황청 내부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자진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바티리크스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베르토네가 도청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다음 교황은 반드시 Curia 내부의 썩은 관료 체계를 뿌리뽑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교황 유력 후보였던 밀라노의 안젤로 스콜라 추기경은 베르토네·소다노 양 추기경을 중심으로 한 반개혁파의 반발을 이기지 못해 이탈리아 추기경들의 지지를 분산시킴으로써 선출에서 고배를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 관계자들은 이 경쟁이 Curia 내 파벌 간 질투와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하며, 당시 내부 분열이 매우 심각했음을 시사한다. 결국 비(非)유럽 출신과 개혁 지향 세력이 연합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프란치스코)를 교황으로 선출했고, 그에게 교황청 개혁과 부패 척결이라는 무거운 과제가 주어졌다. 해외 언론들도 새 교황의 최우선 과제로 ‘관료주의 타파’와 ‘부패 근절’을 꼽았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 퇴치와 기후변화 대응 같은 사회적·신학적 문제를 강조하며 진보 성향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구체적 실행 방안과 속도가 미흡하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더욱이, 가톨릭계 복지시설에서 불거진 아동 학대·매장 사건, 2018년 비가노 대주교의 내부 폭로 등 성직자 성범죄 은폐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교황이 문제 인식을 하고도 가해 성직자를 처벌하지 않았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이로 인해 2018년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면초가’ 위기에 몰려 있다. 교황의 진보적 언행에 불만을 품은 보수파들은 공개 비판을 자제하는 대신 직간접적으로 반발하고 있으며, 비가노 대주교의 폭로가 이어질 때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명확한 해명과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선종소식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고 AP통신이 교황청을 인용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향년 88세.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심각한 폐렴 때문에 입원했다가 회복해 교황청으로 돌아온 뒤 활동을 재개하고 있었다.
2013년 취임 이래 전 세계 14억여 명의 가톨릭 신도를 이끌어 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지 시각 21일 향년 88세로 선종했다고 교황청이 공식 발표했다.
교황청 궁무처장 케빈 페렐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오늘 오전 7시 35분 선종하셨다.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고 알렸다.
페렐 추기경은 이어 “교황은 평생을 오직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바쳐 오셨다”고 강조했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우리에게 신앙과 용기, 그리고 보편적 사랑을 몸소 실천하라고 가르치셨다”며 “특히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과 소외된 이들을 끝까지 돌보는 데 앞장서셨다”고 회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호흡기 질환으로 지난 2월 14일부터 로마의 제멜리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 왔다. 양측 폐에 폐렴 진단을 받았으며, 입원 중 호흡 곤란 증세가 심해 고농도 산소 요법을 병행했다. 또한 혈소판 수치 저하와 빈혈로 수혈까지 받았다.
입원 초기에는 위중한 상태를 보였으나, 38일간의 치료 끝에 지난 3월 23일 퇴원해 활동을 재개했다. 부활절을 앞두고는 로마 시내 교도소를 깜짝 방문했으며, 미국 부통령 JD 밴스를 비공개 회담 형식으로 접견하기도 했다. 부활절 미사에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신자들과 만났다.
그러나 부활절 다음 날 갑작스레 교황 선종 소식이 전해졌다. 전날 부활절 메시지는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이 대독했는데, 그는 “가자 지구의 상황은 매우 비참하다. 전쟁 당사국들은 즉각 휴전을 선언하고, 억류된 인질을 석방해줄 것을 촉구한다. 굶주린 이들의 고통을 덜어 평화의 길을 열자”는 호소를 전했다.
교황의 장례는 평소의 소박한 뜻을 따라 간소하게 거행될 예정이다. 생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겸손을 잃지 않는, 검소한 장례 예식을 원한다”고 여러 차례 밝혀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전임자 베네딕토 16세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자진 사임한 뒤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보수적 성향의 베네딕토 16세와 진보적 행보를 보인 프란치스코의 상반된 이미지는 2019년 영화 《두 교황》으로도 제작된 바 있다.
즉위 직후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은 낡은 전통을 과감히 버리고 청빈을 실천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비싼 가죽 구두 대신 소박한 신발을 신었고, 순금 대신 철제 십자가를 목에 걸었으며, 교황 전용 관저가 아닌 산타 마르타 객사에서 생활함으로써 검소함을 몸소 체험했다.
종교적 열기가 식어가던 시기에, 그는 오히려 가톨릭에 대한 관심을 되살린 인물로 평가된다. 권위적 허세와 사치에서 벗어나 항상 겸손을 잃지 않으려 한 그의 자세는 어린 시절 부에노스아이레스 양말공장에서 보조 업무를 하며 틈틈이 공부를 병행했던 경험과 맞닿아 있다.
1936년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의 장남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중·고교 시절 아버지의 공장에서 청소와 문서 정리를 돕는 한편, 오후에는 화학과목을 공부하며 검소한 생활 습관을 익혔다.
주교와 추기경 재직 시절에도 그는 빈민촌을 찾아다니며 마약·폭력이 만연한 지역 주민들과 직접 교류했다. 1,282년 만에 비(非)유럽권 출신이자 최초의 신대륙 교황으로 선출된 그는, 역대 교황 중에서도 가장 개방적·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즉위 이후,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용을 확대하고 평신도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개혁 정책을 추진하며 보수 진영과 충돌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해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는 아프리카 가톨릭 사회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국제 무대에서는 분쟁 지역을 수차례 방문해 평화 메시지를 전파했다. 2015년에는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에 기여했고, 2017년 로힝야족 사태 현장을 찾아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2021년에는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해 폭력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년 2월) 이후에도 교황은 전쟁 중단과 인도적 지원을 촉구했고, 2023년 발발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도 민간인 보호를 강력히 호소했다. 기후변화에 경종을 울리고 신자유주의 비판에도 앞장섰다.
교회 내 인사 개혁에도 적극적이었다. 전통적으로 파리·밀라노 대교구장에게 자동으로 추기경직을 부여하던 관행을 철폐하고, 가톨릭 세력이 약한 지역 출신도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대전교구장 유흥식 추기경도 그의 손에 의해 발탁되었다.
교황 선출권을 지닌 콘클라베 추기경 138명 중 110명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임명했다. 반면 베네딕토 16세와 요한 바오로 2세 재임 시 임명된 추기경은 각각 23명, 5명에 불과하다.
교황은 2014년 첫 아시아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할 정도로 한반도 평화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방북을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고,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때 재방한이 기대되었으나 이뤄지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지난 몇 년간은 건강 악화로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 2022년 봄 오른쪽 무릎 통증이 심해 휠체어나 지팡이를 사용했고, 2021년 결장 협착증 수술, 2023년 탈장 수술을 받았다. 젊은 시절 폐 일부 절제 수술로 겨울철 호흡기 질환에도 취약해졌다.
“수술받는 동안에도 사임은 생각해 본 적 없다.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건강은 괜찮다”는 내용의 자서전 《희망》(1월 14일 발간)에서 밝힌 바 있듯,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교황직에 대한 책임감을 놓지 않았다.
어록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다면, 세속적으로 우리는 주교요, 사제요, 추기경이요, 교황일 수 있지만, 주님의 진정한 제자는 될 수 없다. 진정한 권위는 봉사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자. 아주 가난하고, 약하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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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주님 곁에서 행복하소서!
그 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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